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온 산을 붉게 물들이다 - 매일경제

재미 작가 윤선희 개인전


서울 중구 갤러리밀스튜디오

윤선희 ‘Mountain 22-2’(2022). 갤러리 밀 스튜디오 분명 형태는 산인데 푸르지 않고 붉다. 윤선희 작가의 ‘Mountain(산) 22-2’다. 붓칠 하나 하나를 살려 쌓아 올린 그림 속 산은 난색(暖色)으로 가득하다. 작가가 서울 도봉산과 북한산 아래에서 집과 학교를 오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가족 간의 사랑과 따뜻했던 기억이 온 산을 물들이는 까닭이다. 역시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산을 표현한 설치 작품 ‘Inside and Out(안팎으로)’이 포근한 느낌의 실과 펠트로 만들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기억들은 1990년 미국으로 떠나 30여 년을 살면서 두고 두고 그에게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됐다.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미 작가 윤선희의 개인전 ‘기억의 연결’이 오는 7월 7~17일 서울 중구 갤러리 밀 스튜디오에서 열린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부모님,특히 아버지를 기리는 헌정 전시로 가족과 함께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과 생각을 회화,설치 등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13일 오후 5시에 진행되는 리셉션에서는 작가의 딸이자 영국 맨체스터 왕립음악학교 석사 과정을 마친 첼리스트 안드레아 김이 가족 간의 아름다운 결합을 의미하는 특별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기억의 연결’이란 전시 제목은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기억되는 순간들을 의미한다. 윤 작가는 “나에게 산은 가족과 어린 시절의 안전을 나타낸다. 이웃을 내려다 볼 수 있었던 쉼터부터 무성했던 밤나무,그 아래 건축가인 어머니와 삼촌이 지은 집,가족의 묘까지 역사가 담긴 장소”며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상실감과 그리움을 느꼈지만,이렇게 가족의 따뜻함과 보호 아래 자란 기억은 나에게 외국 문화속에서 외부인으로서 사는 것의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모두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회복력을 줬다”고 밝혔다.

윤 작가는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산과 그 주변의 풍경을 탐구하고 있다. 이상적인 안식처와 피난처로서 일종의 샹그릴라(신비롭고 아름다운 산골짜기 또는 그런 장소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그는 “지리산 주변의 절과 암자 등 한국을 자주 여행했고,북한 근처의 백두산을 찾은 적도 있었다”며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가 선택한 환경의 차이가 예술가로서 내 작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고 설명했다.

시간과 공간,삶과 죽음,나아가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작품도 눈길을 끈다. ‘Aging and Dying,Living and Surviving(노화와 죽음,삶과 생존)’(2022)이 대표적이다. 윤 작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기쁨과 절망을 모두 느끼게 된다”며 “앞으로도 산을 모티브 삼아 산을 여행하면서,희로애락이 있는 삶을 통해 변화하는 풍경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선희 ‘Inside and Out’(2022). 갤러리 밀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