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을 칠한 종이가 금속이 되는 순간

지갤러리 황수연 개인전


프리즈에서도 솔로 부스

낮은,고요히 돌아가며 부르는 이름 [지갤러리] 톱니바퀴 눈을 가진 올빼미가 걸려있다. 검은 피부는 종이에 흑연을 칠해 만들었다. 얇은 종이를 겹겹이 붙여 몸피를 만든 이 조각의 이름은 ‘낮은,고요히 돌아가며 부르는 이름’. 조명이 반사되면 조각은 은은한 빛을 발해 금속같은 질감을 만들어낸다. 재료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한,손으로 빚어낸 예술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1980년대생 대표 조각가 황수연(41)의 개인전 ‘파스텔,총알,아름다운 손가락들’이 9월 21일까지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린다. 종이,호일,모래 등 재료 실험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는 이번에 흑연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선을 그어 금속처럼 보이는 종이로 만든 조각 ‘작고 날카로운’ 연작을 대거 선보인다.

작가는 세상에서 멈추지 않는 약자를 향한 폭력 사건 뉴스를 보며 종이가 찢어지기 직전까지 검게 흑연을 칠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자를 향한 추모와 자신의 두려움,분노까지 응축해 담았다. 주방도구,필기구,의료용 메스 등 날카로운 형상을 따라 가공한 개별의 종이 조각을 치밀한 설계와 구상대로 조립하듯 만들어냈다. 종이 조각의 뒷면에는 작가가 수집한다는 고대 조각상의 사진도 숨어 있다.

14일 만난 작가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종이에 흑연을 칠하니 금속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연약한 존재가 모여서 무기가 되는 형상을 구상했다. 약자들을 위로하는 ‘토템’으로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낯선 임시 건물이 보인다. 조각의 섬세함과 연약함을 보존하려 피난처(Shelter) 속에 걸어둔 것이다. 작가는 “셸터는 안전한 보호막이라기보단 임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불완전한 공간을 구상했다. 벽이 찢어지고,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건 공격과 침입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을 은유한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황수연과 오래 협업해온 장혜정 큐레이터와 기획했다. 작가는 9월 프리즈 서울에서도 아시아 포커스 섹션을 통해 솔로 전시를 선보인다.

종이 조각이 셸터에 걸려 있는 황수연의 개인전 전시 전경 [지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