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갈구한 '슈만' 음악에 파격적 몸짓

서울시발레단 '한여름 밤의 꿈'


재미 안무가 주재만의 초연작

서울시발레단이 정식 창단 공연으로 선보인 '한여름 밤의 꿈'. 세종문화회관

한 남자(무용수 이정우)가 맨몸으로 무대 한가운데서 몸부림친다. 세찬 빗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중 제5곡 '나의 마음을 적시리'가 흘렀다. '연인의 세레나데' 직후라 이 남자가 홀로 추는 춤은 더 고독해 보인다. 늘 사랑을 갈구했던 슈만의 모습일 수도,외로움을 겪는 누구의 내면일 수도 있겠다. 남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이 또 다른 커플이 사랑의 춤을 추고,쓰러졌던 그에게는 흰옷을 입은 존재(리앙 시후아이)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준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서울시발레단 정식 창단 공연 '한여름 밤의 꿈'이 120분(인터미션 포함)의 2막 7장 구성으로 보여준 다양한 사랑의 단상 중 한 장면이다. 미국 뉴욕 컴플렉션스 전임 안무가이자 포인트파크대 발레 교수인 한국인 안무가 주재만의 세계 초연작이다. 보통 고전 발레가 기승전결식으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보여준다면,이 작품은 뚜렷한 서사는 없다. 다만 지나친 추상성과도 거리를 두고 사랑에 관한 다양한 감각을 표현했다.


여러 사랑의 모습을 하나로 이어준 건 셰익스피어가 쓴 동명의 원작 속 등장인물이기도 한 요정 '퍽'이었다. 앞서 남자에게 우산을 씌워준 것도 그다. 원작에서 엉뚱한 사람들을 이어줘 갈등을 유발하는 장난꾸러기였던 캐릭터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사랑의 현자'가 돼 인간을 보듬어준다. 퍽은 때 묻지 않은 사랑을 상징하는 동시에,관객과 무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다. 이 캐릭터 외에 원작과의 연결점은 많지 않다. 보통 무용작이 멘델스존 음악과 꾸며졌지만 연출 겸 안무가 주재만은 슈만을 택했다. 주재만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슈만 음악을 1000곡 넘게 종일 들었다"며 "감정과 사랑에 얽혀 살아갔던 인생이 너무 와닿고 이해된다"고 밝힌 바 있다. 미디어 아트 등 영상 기술을 활용한 무대 연출도 인상적이다.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