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보행도, 지능 발달도 요리에서 시작됐다

이젠 '푸드사피엔스'시대 … 인류 진화는 음식과의 투쟁史

인류의 역사는 음식을 어떻게 구하고,어떻게 요리해 먹을지와의 투쟁이었다. 학자들은 요리를 시작하면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본다. '흑백요리사'들의 선조는 약 200만년 전,인류가 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등장했다.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리법이 있어,그 숫자가 우주의 원자보다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음식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기본 중 기본이다. 음식에는 신체 조직의 성장과 유지 등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다. 물론 인류는 단순히 살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넘어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음식을 항유하는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요리 과학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학기술을 접목해 음식의 분자 하나까지 요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리화학적 지식을 동원해 분자 단위까지 재료와 조리법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셰프들이 늘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것은 불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전까지는 주로 채집에 의존했다. 고고학자들은 약 50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라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했다고 본다. 이들도 우리처럼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을 했다. 다만 걸음걸이는 현대인과 많이 다른데,이는 소화기관인 장(腸)이 컸기 때문이다. 아직 요리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주로 과일이나 채소 등을 채집해 먹었다. 날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해 장이 커졌다. 소장과 대장이 매우 길었다. 그 결과 허리는 구부정해졌고 배는 불룩해졌다.


숲에 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지구의 기후가 건조해지자 초원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동물을 먹기 시작했다. 이들을 호모하빌리스라 부른다. 호모하빌리스는 긴 팔과 돌출된 얼굴을 갖고 있었다. 유인원과 닮은 모습이다. 호모하빌리스의 주식은 뼈 사이의 골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골수는 지방질이 많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이때부터 에너지가 뇌 발달에 쓰이면서 뇌 용량이 늘었다. 치아는 작아졌고 소화기관이 줄며 배가 들어갔다.


약 200만년 전,드디어 불을 쓰기 시작한다. 최초로 불을 다룬 인류의 조상인 호모에렉투스는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불에 익히면 식물의 섬유질과 동물의 육질이 모두 부드러워진다.


음식을 불로 요리하면서 인류 진화의 역사가 격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음식을 씹는 데 걸렸던 시간을 하루 4시간가량 절약할 수 있게 됐고,소화도 더 빨라졌다. 소화로 인한 에너지 소모도 10%가량 절약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남은 에너지와 시간은 뇌 발달에 쓰였다. 학자들이 요리를 하면서 인간과 동물 간 경계가 지어졌다고 보는 이유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요리의 시대가 열린다. 전 지구적으로 지역의 식품과 환경을 기반으로 다양한 요리가 등장했다. 지역마다 각각의 식문화와 조리법 등이 형성된 것이다. 글로벌 조사 업체 갤럽과 조리법 공유 업체 쿡패드가 2022년 내놓은 '전 세계 요리의 글로벌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는 일주일에 평균 6.7번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 인구 약 80억명이 이 정도 빈도의 요리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요리의 개수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일 먹는 음식들도 과학적으로는 베일에 싸여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치 같은 발효식품이다. 발효는 혐기성 미생물이 무기호흡을 통해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만들어지는 산이나 알코올을 이용하는 게 발효식품이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부패 과정을 응용한 음식도 발효식품이다.


발효는 화학반응이 아니라 미생물 대사활동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발효에 개입하는 미생물 종류가 매우 많다. 김치는 흔히 젖산균이 발효 과정에 관여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김치에서는 이로운 유산균과 유해균이 동시에 발견된다. 이 미생물들이 조화를 이뤄 김치의 발효를 이끌어낸다. 다만 발효를 활용해 요리 재료를 만들어내는 과학기술들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추세다. 요리 재료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방법으로 발효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증식시켜 아예 고기 같은 식재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연구가 활발한 실험실 배양육이 대표적이다. 배양육은 소,닭,돼지 등 동물 체외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해 합성한 고기를 뜻한다. 식량을 얻기 위해 동물을 도살할 필요성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식량 생산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분의 1을 담당하는데 대부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조사 업체 리싱크X는 배양육 시장이 가축 사육 시장 점유율을 줄여 현재 사육에 쓰이고 있는 토지 중 80%를 원상태로 복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호주 면적을 모두 합친 크기다.


벌 없이 꿀을 생산하는 법도 연구 중이다. 멜리바이오라는 미국 기업은 합성 꿀을 만드는 미생물 발효 공정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천연 꿀과 맛·향에서 차이가 없는 꿀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몇 년 전 국내에서 '분자요리'가 유행했다. 분자요리는 물리화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분자 단위까지 재료와 조리법을 분석한 요리다. 전통적인 조리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맛과 향,식감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분자요리라는 개념은 1980년대 프랑스 화학자 에르베 티스와 헝가리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가 처음 제시했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분자요리법은 알긴산과 칼슘을 이용해 졸 상태의 재료를 얇은 막을 지닌 캡슐로 가공하는 '구체화' 기법이 있다. 칵테일을 만들 때 자주 쓰인다. 진공상태를 뜻하는 프랑스어인 '수비드'도 분자요리법 중 하나다. 요리 재료를 진공 포장해 60도 정도의 물에서 천천히 조리한다. 재료의 맛과 향을 극대화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준다. 액체질소를 이용해 요리 재료를 급속 냉각시킨 후 기름에 튀겨내는 '크라이오 프라잉' 등도 대표적 분자요리법으로 꼽힌다.


유전자교정은 이미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는 요리에 적용되고 있는 과학이다. 유전자교정은 생명 정보를 담은 유전자의 특정 염기서열을 효소를 통해 잘라내는 기술로 21세기가 낳은 가장 혁신적인 생명공학 기술로 손꼽힌다. 농축산물에 적용하면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미국 UC데이비스 연구팀은 2022년 유전자를 교정해 땅속의 질소 대신 공기 중 질소를 자양분으로 삼는 벼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플랜트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이 벼는 질소 비료를 토양에 뿌리지 않아도 잘 자란다. 질소 비료는 벼의 생육을 좋게 해 수확량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영양분이지만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를 만들어낸다. 비료 사용을 줄여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벼 외에도 토마토,옥수수,밀,쌀,감자와 같은 주요 경제 작물들의 품질 향상과 관련된 연구개발(R&D)이 진행됐다.


푸드테크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푸드테크 시장은 1843억달러(약 253조원)다. 2034년까지 연평균 9.79% 성장률을 보이며 5158억달러(약 708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고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