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법률가들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지음
박경선 옮김,2만3000원,진실의힘 펴냄.
악명 높은 독재와 유대인 학살 등 세기의 악인으로 기록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은 놀랍게도 철저한 법치주의를 따랐다. 당시 나치당은 독일의 법과 정의에 따를 수 없는 이질적 인종,특히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정당화했다. 아리아인 혈통이 아닌 공무원은 퇴직 처분한다고 규정한 '직업공무원제의 재건을 위한 법'과 유대인과 독일인 또는 독일 관련 혈통 국민 간의 결혼을 금지한 '독일 혈통 및 독일 명예 수호를 위한 법' 등이 대표적이다.
신간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윤리학·정치철학 교수가 나치 독일의 숨은 조연,히틀러와 나치에 동조하고 정당화했던 법률가들을 조명한 책이다. 법과 역사,정치 분야의 최신 연구에 기반해 나치 법률가들이 저지른 법 규범의 전복을 정밀히 추적하는 한편,그 과정에서 창안한 기괴한 법사상과 이론을 파헤친다.
히틀러는 기존 법체계의 허점을 이용하고,필요한 경우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자신의 무소불위 권력을 합법화했다. 나치당 일당 체제로 권력을 독점한 히틀러는 1933년 정부가(사실상 자신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 의회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입법 권력을 독점했다.
심지어 '수권법'조차도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48조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조항은 대통령에게 긴급명령을 통해 군사력 지원을 요청할 권한,거주의 자유·표현의 자유·집회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나치 법률가들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긴급명령에 따른 통치와의 연속성을 지적하며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적법하다"고 주장했고 독일 국민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나치 체제에서는 형법도 국가가 시민을 지키기 위한 사법적 수단이 아니었다. 민족공동체의 순수성과 정권이 가진 불가침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을 숙청하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책은 독재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법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다 보면 국가권력이 일반적인 도덕과 법 기준을 전부 위반해도 이를 막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