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순수하면서도 뜨겁게 …'쇼팽의 첫사랑' 연주

피아노 임윤찬·지휘 예르비


도이치 캄머필과 내한 무대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지휘자 파보 예르비. 빈체로

침묵까지도 연주해낸 거장들의 밤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독일 브레멘의 정상급 악단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이 에스토니아 출신 마에스트로 파보 예르비의 지휘 아래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협연을 펼쳤다.


임윤찬은 올해 발매한 스튜디오 데뷔 음반 '쇼팽: 에튀드'(데카 레이블)로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을 휩쓸며 세계적 입지를 다졌다. 영국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피아노 부문과 젊은 음악가 부문 2관왕에 이어,프랑스 디아파종 선정 '올해의 디아파종 황금상'에서 젊은 음악가 부문도 거머쥐었다. 미국 카네기홀 독주회와 월드 투어,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영국 BBC 프롬스 데뷔,미국 보스턴 심포니·LA 필하모닉 협연 등 전 세계를 누린 후 금의환향했다. 국내 무대는 지난 6월 리사이틀 이후 반년 만이다.


선곡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우수에 찬 선율 위로 임윤찬 특유의 맑은 음색,박자를 적당히 밀고 당기는 타건,내달릴 듯한 속도감이 돋보였다. 예르비는 피아노를 충실히 받쳐주면서도,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주고받는 부분에선 절묘하게 합을 맞추게 해 긴장감을 유지했다. 피아노가 격정적으로 마지막 건반을 내리치면 뒤에 조용히 깔려 있던 오케스트라가 서서히 음량을 높여 주제를 펼쳐냈다.


2악장에선 임윤찬의 섬세한 피아니즘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 쇼팽이 10대 때 첫사랑을 떠올리며 작곡해 그 자체로 서정성이 깊고 호흡이 많은 곡이다. 열정적인 연주와 개성 있는 해석으로 주목받아온 임윤찬이 연주 중 빈 공간을 만들어내는 모습에는 숨 죽여 듣게 하는,낯설면서도 묵직한 흡인력이 있었다. 이어 화려한 기교,민속적 리듬으로 구성된 3악장에선 페달을 잘게 끊어 밟으며 활기차면서도 명료한 소리를 냈다. 호른,바순 등 관악기와 어우러지는 음색도 듣기 좋았다.


음악에 몰입해 있는 임윤찬과 그렇지 않은 임윤찬 사이의 간극은 연신 관객들을 웃게 했다.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채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는 인사,빠르게 입·퇴장하는 걸음걸이에 소년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앙코르로 들려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1번 아리아는 끊김이 없는 유려한 소리로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