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인간은 자기 내면에서 '서술자'를 찾아내야 한다"

다성적 목소리로 타자를 발견한 올가 토카르추크


올가 토카르추크는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의 미투 파문으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수상은 2019년 10월에 발표됐는데,1962년생인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당시 '50대 여성'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상당한 파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올가 토카르추크의 노벨상 수상에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로지르는 '다인칭의 목소리'가 그의 문학 세계 내에 굳건히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2022년 한국에도 출간된 책 '다정한 서술자'는 그런 그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6편의 강연록,6편의 에세이를 묶은 책인데 '다정함'과 '서술자(내레이터)'라는 키워드로 그만의 문학을 정의 내린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서 '서술자'는 단지 작가 자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작가란 자신의 내면에서 '적절한 서술자'를 찾아내야 하는 소명을 지닌 인물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서술자가 심부에 숨어져 있고,이 서술자는 영혼과 육체 어딘가에서 독립적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것. 이 유령 같은 서술자는 자아의 안팎을 떠돈다. 그 서술자의 목소리를 부지런히 옮겨 적는 것,그게 작가의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올가 토카르추크가 말하는 '다정함'이란 또 뭘까. 그가 이 책에 남긴 다음 두 문장은,다정함이 인간 삶의 한 조건이자 자세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기도 하다.


"다정함이란 다른 존재,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속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다정함은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고,상대와의 유사성과 동질성을 깨닫게 한다."


모든 '나'들,즉 인간은 타인과 세계에 연루됨으로써 살아가는 존재다. 타자는 자아에 영향을 끼치며,그 역의 관계도 언제나 성립한다.


타자의 운명은 그러므로 자아로부터 방치되거나 자아가 외면해선 안 되는,깊은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 타자의 운명,세계의 운명에 다정한 자세로 다가가는 일은 자신의 운명을 사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그래서 '다정한 서술자'의 시선으로 세계의 명명되지 않는 인간 감정에 가닿으려 한다. 프로이트 심리학,불교 철학,신화와 전설 등을 넘나드는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로써 그의 다성적인 목소리의 성(城)을 구축해냈다. 그의 대표작 '방랑자들'이 특히 그렇다. 휴가 중에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수십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한 연구원,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다 지하철역 노숙자로 살아가는 여성 등 이 세계에서 부유하는 모든 인간의 감정이 모자이크처럼 담겼다.


그들은 정처(定處)가 없다. 정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자들이다. 그 유령들의 표정이 바로 우리 인간의 초상이기도 하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