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연,톨스토이 ‘주인과 하인’ 각색
눈보라 속 길잃는 하룻밤 이야기
6일 연속 매진..오는 6월 부산 공연
소리꾼 이자람이 판소리 신작 ‘눈,눈,눈’을 선보이고 있다. <LG아트센터> “여기는 지금 영하 28도의 러시아 눈밭입니다.”
한국 대표 소리꾼 이자람의 한마디에 관객은 어느새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광활한 설원 위에 놓여졌다. 이자람은 연신 입으로 ‘슝’하는 바람소리를 내며 부채를 휘저었고,‘히잉’하는 말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설원 위를 걷는 말을 표현했다. 말 그대로 이자람은 온몸을 활용해서 인물을 생동감있게 그려냈다.
이자람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눈,눈’은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에 상인 바실리와 일꾼 니키타가 숲을 사러 나섰다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는 하룻밤의 이야기다. 바실리는 이윤만을 추구하며 숲을 매입하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소리꾼 이자람과 고수 이준형이 판소리 신작 ‘눈,눈’을 선보이고 있다. <LG아트센터> 무대 위에는 부채를 든 소리꾼 이자람과 소리북을 치는 고수 이준형만이 존재한다. 이자람이 내뿜는 에너지와 무대 장악력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준형은 북소리 뿐 아니라 ‘어이쿠’,‘잘한다’ 등 다채로운 추임새를 상황에 맞춰 넣는다.
두 사람의 호흡으로 노래의 리듬감까지 더해지면서 긴박함과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관객들은 소리를 따라가며 바실리와 니키타,제티가 위기에 빠질 때는 안타까워하고 그들이 생의 고비를 넘을 때는 안도의 박수를 보냈다.
이자람은 국내외 문학작품을 판소리로 재창작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는 ‘사천가(2007)’를 시작으로 ‘억척가(2011)’,‘노인과 바다(2019)’ 등을 발표하며 판소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이자람은 “창작을 하지만,결국 전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판소리의 본질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더하고 있다.
이번 ‘눈,눈’은 세계 초연으로 국내 관객에 먼저 선보였다. 이자람은 공연 중에 “이 작품은 이제 막 태어나 세상에 나온 지 5일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아기가 점점 인간의 형상을 갖춰가는 성장을 시작할 것”이라며 “향후 루마니아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눈,눈’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6일 동안 공연돼 지난 13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흥행 보증 수표’답게 6일 연속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오는 6월 14~15일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11월 8일~9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을 이어간다.